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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나 어렸을적에

긴~긴겨울

by 막무가내 옥토끼 2014. 10. 9.

2013년 계사년 새해가 밝았다.

 

세월이 왜 이리 빠른지~!!

 

생일이나 추석, 설날이 가까워 질수록 손꼽아 기다리며

 

하루를 1년처럼 길게 느꼈던 어릴적(국민 학교 2~3학년) 생각이 난다.

 

 

 

스산한 가을 바람이 불어 오고 들판의 곡식과 채소가 서리 맞아

 

힘없이 늘어져 있음은 멀지 않아 다가올 동장군을 예고함이다.

 

막바지 가을 걷이와 김장, 땔감 준비로 지나가는 강아지 손도 빌려야 할 판이다.

 

어느새 눈발이 날리는 긴 긴 겨울이 시작되고...

 

군불을 지펴놓은 방구들 이불속에 누워 있어도 "윙~윙" 거친 바람 소리에 온몸이 오싹오싹~

 

새벽녘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에 눈꺼풀을 간신히 밀어 올리고

 

밖으로 나가면 차가운 기운이 -쨍-하고 얼굴을 때린다.

 

종종걸음으로 마당 구석의 변소로 달음질치면 부엌에서 엄마가 내다보며

 

"아이고~ 저 가시내 안 깨웠으면 이불에다 오짐 쌀 뻔 했네"하신다.

 

걸레를 주섬주섬 챙겨 세숫대야에 넣고 바께스를 찾아 들고 우물가로 향한다.

 

세수하고 걸레를 빨아 바께스에 물을 길러 집에 가면 손이 곱아 펴지질 않는다.

 

따뜻한 밥그릇에 손을 녹이며 시레기 된장국에 밥을 말아 먹고 책보를 들고 등교~

 

학교에 가다가 상골바우(공동묘지)를 지날때면 세찬 바람에 귀때기가 떨어져 나가는듯 하다.

 

교실은 난로불을 피우느라 창문을 열어 놓았고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다.

 

키 큰 죄로 맨뒤 문옆에 앉자 공부를 하다보면

 

손이 곱아 글씨는 게발세발~ 발가락은 감각을 잃어 눌러도 느낌이 없다.

 

 

 

드디어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겨울 방학~ㅎㅎㅎㅎ

 

엄마 아빠가 마실간 틈을 타 오빠와 남동생들이 대나무와 굵은 막대기들을

 

방안에 들여 놓고 연과 연자쇠?(얼레)를 만든다 팽이를 깎는다하며 정신이 없다.

 

알록달록 목도리. 벙어리 장갑으로 중무장을 하고 동무들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슬슬 찾아간다.

 

푸른하늘 은하수에 감자가 싹이 나고, 공기놀이 실뜨기에 날이 저물면

 

골목골목 저녁먹어라 부르는 소리가 때론 정겹게 때론 겁 나게 들려온다.

 

저녁밥은 무우 생채에 김치를 쏭쏭썰어 넣고 고추장 한숟가락 참기름 한방울 ...양푼 비빔밥이다.

 

6남매 숟가락질이 바쁘다.

 

금새 텅 비어 버린 양푼을 바라보며 아쉬움에 숟가락을 빨고 있으면

 

엄마는 가마솥의 누릉밥을 박박 문질러 한 양푼 또 안겨주신다.

 

설겆이를 마치고 들어오신 엄마가 상을 내주며 숙제를 하라시니

 

이불을 둘러 쓰고 앉자 처음 며칠은 일기도 꼬박꼬박 산수도 한장한장 푼다.

 

군고구마 냄새가 솔솔 코끝을 간질이면 아궁이속에 묻어둔 시커무리하게 탄

 

고구마를 꺼내와 냇 꺼가 맛이 있네~ 닛 꺼가 맛이 없네~하며 토닥거리며 먹어댄다.

 

흐뭇한 눈빛으로 바라보시던 엄마는 한숨을 지으시며 "새끼들 입이 제일 무섭다"고 하셨다.

 

쌀두주에 가득 채워둔 양식과 방구석자리에 그득하던 고구마가 반 이상 줄어든 것을 아신 까닭이다.

 

좁은 방안에서 쿵쿵 부딪치며 씨름도 하고 팽이도 치고 딱지도 치며 웃고 떠들다가

 

쌈박질하고 울고 혼나고 집밖으로 쫒겨나기도 하는 속에 긴긴 겨울은 꿈쩍 않는다.

 

 

 

그래도 남은 방학은 짧아지고 음력설이 다가온다

 

집집마다 마른 쑥을 삶아 쓴 물을 우려내고, 고구마를 고아 조청을 만들고,

 

노란콩을 볶아 맷돌에 갈아 콩가루를 만드느라 엄마들이 분주하시다.

 

고창 설대목 장에서 역거리(조기)와 과실등을 사들고 들어오시는

 

엄마의 보따리속에 내 설빔이들어 있기를... 마음졸이며 뒤적여본다.

 

이 양말이 내 양말인가? 저옷이 내옷일까! 내 신발은 왜 안사오셨나...

 

쿵덕쿵덕 떡방아소리가 들리는 날 난데없이 꽤~애액 꽥~"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린다.

 

놀이에 정신이 팔려 있던 조무라기들이 우르르 달음박질해 다다른곳엔

 

모닥불이 피워져 있고 벽돌을 괴어 큰 솥을 내걸고 물을 끓인다.

 

어른과 장정들이 한데 모여 널판지위에서 돼지를 잡는다.

 

얘들은 가라고 손을 내젓지만 이런 구경거리는 흔치 않다.

 

멀찍이서 그리고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서 질문까지 해가며 흥미롭게 지켜본다.

 

가마솥에선 뻘건 기름이 둥둥 뜬 돼지 내장 찌게가 설설 끓고

 

한쪽에선 큰 다라이에 순대를 만들어서 삶아내느라 아줌마들 손눌림이 바쁘다.

 

얘들을 시켜  노인들을 모시고 오라해서 막걸리와 뜨끈한 고기국으로 동네 잔치가 벌어진다.

 

 

 

새끼줄에 묽인 까만털이 숭숭박힌 비계반 살코기반인

 

돼지고기 2~3근을 들고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시면 세상부러울게 없다.

 

따뜻한 아랫목을 콩나물시루와 술항아리에 양보한 덕분에 설이 풍성해졌다

 

쑥떡, 시루떡, 가래떡, 인절미, 돼지고기 산적, 동태전, 부꾸미,

 

식혜, 산자, 옥꼬시 ,메밀묵, 각종 나물과,  과일, 생선...

 

설날 아침 떡국을 배불리 먹고 세배돈과 양손의 과자를 슬쩍 숨겨놓고 위,아랫동네 세배를 다닌다.

 

어른들이 인자한 웃음으로 반겨주시고, 먹을것을 주시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시며 올해 몇살 되었는지도 물어 보신다.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노래가 절로 나온다.

 

집안에 설음식이 하나, 둘 떨어지고 딱딱하게 굳은 거므스레한 쑥떡만

 

조금 남아 있을때쯤 겨울방학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마도 그때가 전국적으로 학생들이 공부을 제일 열심히 한때가 아닌가 싶다 ㅋㅋㅋ

 

방학책도 풀고 산수도 풀고 국어, 일기쓰기. 만들기, 그림 그리기...시간이 없다 몸으로 때워야지ㅠㅠㅠ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와도 가는 시간은 쏘아논 화살 같다.

 

길게만 느껴졌던 긴긴 겨울이 처마밑의 고드름과 함께 짧아져 갔다.

 

 

 

2013년 1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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