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리를 태워버릴듯 내리쬐는 땡볕과 게릴라성 폭우로 돌변하는 장마비가 번갈아
전국을 오르내리며, 곤조를 부리는 요즘 날씨따라 심신도 변덕이 심해진다.
푹푹 찌고 삶을 삼복 더위, 앵~앵~모기들과의 전쟁, 맴맴~쓰르륵 쓰르륵
귀청떨어지는 쓰르래미의 합창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숨이 컥 막힌다.
이럴땐 시원한 수박이 제일인데 이가 시원찮아서 찬 수박은 물 건너 간지 오래다.
한 바가지 끼얹으면 온 몸이 쩌르르~ 소름이 돋아나는
안덤 웃것태 시암물이 절로 생각나는구나~~!!
어릴적, 여름이면 머리속과 목아지, 등거리에 땀때기가
바늘꽂을 자리도 없이 솟아났다.
따끔거리고 근질거려 미치고 팔딱 뛸 지경이면, 칠흑같이 어둔밤에
엄마는 웃것태 시암에 목욕을 가자 하셨다.
후훗~~ 후덥지근하고 지루하였던 오래전 여름날들이
돌이켜보니 추억의 한 갈피를 차지하고 있을 줄이야!!
때는 바야흐로 쓰르래미도 울다가 지쳐, 정적 마저 감도는 여름 한 낮...
학교 갔다 돌아오니 집은 텅 비고 윙윙~ 파리만 날리고 있다.
밥바구리의 꽁보리밥을 덜어 시금털털한 열무지와
노란 닥깡을 얹어 한그릇 뚝딱, 뭔가 허전하다~
찬 물에 밥말아 매운 고추장과 짜디짠 된장에
풋고추를 찍어 한 그릇 더~ 배가 남산만 해졌다 ㅎㅎㅎ
감 나무 그늘아래 멍석을 깔아놓고, 까끔살이(소꼽놀이) 작작거리(공기놀이)를
하며 혼자 놀다가 시들해져 한잠 자는데, 쓰르래미가 목청껏 잠을 깨운다.
심심하여 동무네집을 기웃거리니 이웃집 할매가
"아까막에 아그들이 다들 주전자들고 냇깔로 고동잡으로가드만 너는 왜 안 갔냐?"
허신다 "그~냥요~".....
터덜 터덜 새밭에서 밭메고 있을 엄마를 찾아갔는데 아무도 없다.
오늘 따라 우리밭 옆 복숭아밭에도 인기척이 없다.
주렁주렁 빨갛게 익어가는 복숭아를 보니 침이 꼴깍 넘어간다.
암만 살펴봐도 암도 없쓴게 슬그머니 복숭아 2~3개를 따서 꼴마리에 감춘다.
후다닥 집으로 돌아와 꺼내니 그 자리가 복숭아 꺼시락땜시 따갑고 간지럽다.
복숭아를 물에 씻어서 잽싸게 발라먹고 씨는 멀~리 대밭으로 던져 흔적을 없앴다.
어둑어둑 땅거미가 질무렵, 식구들이 하나, 둘 들어온다.
마당쓸고, 물길러 오고, 생쑥으로 모기불 피우고...
휘영청 둥근달이 별과 함께 마실 나온 달빛 아래,
모기불 연기 속에서 수제비 한 양푼을 비워냈다.
진작부터 시끌시끌 떠들썩한 시정(모정)거리를 담박질쳐 가보니,
동네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 왁자지껄, 술렁술렁, 까르륵 까르륵 야단굿이다.
고무줄 놀이, 굼뱅이 살이, 다방구를 거쳐 천리만리 숨박꼭질을 할때면,
어느덧 사위는 조용해지고 어느집 개가 달을 보며 "컹 컹" 짖는 소리만 들린다.
술래 몰래 살짝 집으로 들어가 모기장막 속에서 곯아 떨어진다.
새벽 6시도 안 됐는데 "넘으집 자석들은 진즉에 일어나 깔을 한 망태기나
비어오드만, 우리 새깽이들은 아즉도 오 밤중이네~"
엄마가 부지깽이로 부뚜막을 두드리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시암으로 갔다.
내동떡, 사시난떡, 대강리떡, 용암떡, 어남떡...님이 바쁘게 손을 놀리며 열을 내신다.
"어느놈의 손목댕이가 맛도 덜들은 복숭아를 싹 훝어 가버렸어~어 "
"아이고, 냇깔옆페 우리 감자밭도 누가 다 뒤집어 놓았등만~"
"말도 마씨요, 이제 개우 알 조까 받어 먹을랑가 했드만,
엊 저녁때 우리 암탁도 두 마리나 서리해 가불당게로~"
"서리들을 해가도 봐 감서 쪼깨씩만 해가야지 다 못쓰게 맹그러노먼 되간디~"
"아이고~ 넘의 자석들 욕 못히여~
우리네 자석들이 저녁내 놀다가 배고픈게 다 뒤져다 먹었을 것이여"
지은죄가 있어 고양이 세수를 하는둥 마는둥, 줄행랑...
학교길에 만난 동무들과 곧 다가올 여름 방학에 계획적으로
놀 계획을 세우며, 금새 십리길을 걸어 고창 국교에 도착했다.
엿장시의 구성진 가위질 소리,
아이스께~끼~이 어름과~자아~ 깨끼 장수의 외침 소리,
튀밥장수의 "뻥이요~" 소리들이
오 뉴월 엿 가락 처럼 늘어진 우리를 일으켜 세워,
무던하게 지낼수 있게도 했었지....그 긴 여름을!!!
2013년 7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