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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나 어렸을적에

그때가 그립다~~

by 막무가내 옥토끼 2014. 10. 9.

엄마의 79세 생신을 맞이하여 5남매가 설레는 마음으로, 고향을 찾아

 

즐거운 한때를 보낸 5월도 어느새 훌쩍 지나가고 있다.

 

그 때 우린 시간을 벌기 위해 밤 늦은 시간에 출발하여 새벽 2시에 친정에 도착했다.

 

차에 시달리고 늦게 잠이 들어 늦잠을 잘것 같으나, 시골에 가면 항상

 

더 일찍 일어나게 되고, 머리가 무겁거나 멍멍하지도 않다...공기가 끝내줘요 ㅎㅎ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들이 내려간다하면, 엄마는 자식들 하나하나의 입맛에 맞춘

 

음식들(팥죽, 쑥송편, 콩나물 잡채, 식혜, 팥찰떡, 물김치, 겉절이, 나물 무침)을 하셨는데

 

이젠 몸이 안좋아 아무것도 못해 놓았다고 미안해 하셨다...아이고 무슨말씀,

 

그저 건강하시기만 하세요!!!

 

부랴부랴 아침을 먹고, 아버지 산소에 들러 인사를 드리고

 

영광, 백수의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와 산책을 했다.

 

경관이 좋은 곳에서 사진도 찍고, 간식도 먹고, 모래사장에 내려가

 

예쁜 조개와 소라껍데기도 주웠다.

 

다음날엔 동생들이 어릴적 뛰놀았던 세곡에 가본다하여,

 

여차하면 고사리를 꺽으러 산에 들어갈 준비물을 챙겨 따라나섰다.

 

책보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동네 언니,오빠들을 따라 고창국교를 오갔던

 

머나먼 십리길이, 차로 가니 눈 깜짝할새 휙 지나간다.

 

마을에 들어서니 꼬불꼬불하던 논둑길 가운데로 넓은 길이 나있어

 

웃껄(웃골)방죽 앞까지 들어가 차를 세웠다.

 

아~~웃껄 방죽!!

 

내 어릴적 추억이 고스란히 잠겨 있는곳!!!

 

 

 

우리집의 다랭이 논(진배미,  새악배미,도시락배미, 밑막배미, 상배미, 방죽배미)

 

다섯마지기와 큰 밭은 웃껄 방죽 위와 조금 더 윗쪽 산밑에 자리잡고 있다.

 

들에서 일하시는 엄마, 아빠를 위해 우물물을 길러 사카리 두,세개를 녹여

 

달달해진 시원한 물주전자를 들고 기우뚱거리며 오갔던 방죽길...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호기심에 한모금, 목이 말라 한모금 홀짝거리며

 

지나던 그곳...

 

감자 삷아 술창거리 내가고 호맹이, 숫돌 가지러 하루에도 몇번씩 고꾸라질듯

 

바삐 뛰어가다가도, 방죽에 이르면 천천히 조심조심 걸음을 떼 놓았다.

 

물이 많이 차 있을때면 물에 빠질까 겁도 나고, 물위에 비친 내모습을 들여다보며

 

옷매무새를 가다듬기도 했었다...난 소중하니까 ㅋㅋㅋ

 

봄이면 물가에 드랭이가 있는지도 살펴보고,

 

둑위에 돋아난 풀위에서 재주넘기도 하고, 삐비 뽑고, 찔롱 끊으러댕기다가

 

스르륵 지나가는 꽃뱀에 놀라 토끼뜀을 했었다.

 

여름이면 동네 머시마들이 벌가숭이가 되어 물장구치고, 개헤엄, 개구리헤엄치기

 

시합을 하는가 하면, 뒤로 누워 물결에 몸을 맡기고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다.

 

그 앞을 지날라치면 벌거벗은 머시마들이 수통위에 올라가 오줌발을 갈기거나,

 

따이빙하며 낄낄거렸는데 왜 내가 넘부끄라서 담박질을 쳤었는지...

 

어쩌다 방죽이 조용한 날에는 질퍽거리는 흙속에 빠진 신발은 내비쳐놓고,

 

치매는 빤스 고무줄안으로 낑기고, 소금쟁이, 물강구가 빙그르 돌며 헤엄치는 걸

 

구경하며 한발 한발 물속으로 들어 갔다.

 

어느새 허벅지까지 물이 찰랑거려 빤스가 젖어 버리면, 에라 모르것다 쪼그리고

 

앉자서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고, 팔이랑 다리도 뽀도독 소리나게 씻곤 했다.

 

가을날 밭에서 고구마를 캐오다가 방죽물에 두번 세번 깨끗이 씻으면,

 

분홍빛깔 고구마가 참 예쁘게도 보였다.

 

지나가던 어른들도 "야 야~ 고구마에서 금나오것다" 하시며

 

옆에서 등물도 하고 흙묻은 삽이랑, 껌정 고무신도 씻곤 하셨다.

 

벼가 익어갈 즈음 방죽의 수문을 열어 물을 빼내면 동네 사람들이

 

다라이와 박께스를 들고 모여 들어 우렁과 붕어,미꾸락지를 잡았다.

 

운 좋으면 팔뚝이나 손 바닥만한 붕어와 미꾸락지를 건져 올리기도 하고,

 

알이 꽉 찬 애기주먹만한 우렁을 한 다라씩 잡기도 했다.

 

미끈미끈하고 걸쭉한 뻘속을 가만가만 걸어다니면 볼록한 느낌의 우렁이 밟혀

 

손으로 줍곤 했는데 어른, 아이 할것없이 웃음꽃을 피우며 즐거워 했다.

 

여름내 고된 농사일에 반쪽이 된 식구들이 모처럼

 

붕어 매운탕, 추어탕, 우렁회무침, 우렁된장국으로 며칠동안 몸보신을 했었다.

 

부지깽이도 일어나 거든다는 바쁜 추수철이 끝나고 겨울에 접어들때 쯤,

 

어디서 날아 왔는지 청둥오리들이 방죽에 내려 앉곤 했다.

 

고기맛을 알아 버린 어른들이 돌팔매와 지게 작대기을 날려,

 

날아오르는 청둥 오리를 잡아서 술추렴을 하기도 했다.

 

꽁꽁 언 겨울이 되면 대나무 쓰케트와 나무 썰매를 솜씨있게 만들어

 

동네 꼬마녀석들이 방죽으로 모여 들었다,

 

더러 아빠들도 나와 얼름위에서 썰매도 끌어주고, 연도 잡아주고, 팽이치기도

 

한 수 가르쳐 주시며 실력을 뽐내셨다.

 

당연히 아들,딸들의 어께는 으쓱해졌고 아빠 없는 애들은 음매, 기죽어~

 

 

 

웃껄 방죽을 바라보니 옛날의 넓디넓은 방죽보다는 쪼그라든듯 보이는데,

 

누군가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는 풍경이 더없이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동생들도 방죽을 바라보며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추억에 빠졌는지 말을 아낀다.

 

방죽을 지나 우리 논, 밭을 들러보니 감회가 새롭고, 추억 또한 새록새록~

 

한참 후...여동생과 남편과 나는 고사리를 찾아 방장산 기슭으로 스며들었다.

 

 

 

사춘기 시절 힘들고, 가난하고, 까맣게 탄 촌티나는 내 모습이 싫어서

 

시골을 벗어나고 싶었다.

 

서울에 가서 돈 벌어 깨끗하고 세련되게 살고 싶었다.

 

그리고 서울 살이 몇 십년.....그때가 그립다!!!

 

 

 

2013년 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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