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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나 어렸을적에

도시락...아련한 그 시절

by 막무가내 옥토끼 2014. 10. 9.

아침마다 눈을 뜨자 마자 옆에 놓아둔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해보면 6시...알람이 울리기 직전이다.

어쩌다 다섯시 반쯤 잠이 깨면 보너스 같은 30분을 주체 못해

일어났다 누웠다하며 딩굴거리는 사이 시간이 휙 지나가 버린다.

아무래도 바쁜 아침 시간엔 시계바늘도 덩달아 달음박질을 치나보다.

 

주방에 들어서면 오늘은 도시락을 몇개나 싸야하지? 무슨 반찬이 좋을까!

머리속은 복잡하고 마음은 급하다~ 좀더 일찍 일어날걸...

직장다니는 착한 딸 점심도시락, 도서관 다니는 이쁜 딸 점심, 저녁 도시락,

등산 가는 남편 도시락까지 늘어 놓으면 정신이 없다.

식성도 다르고 요구 사항도 각각인데 시간도 없고 반찬도 마땅치 않으면,

김치와 계란말이로 통일....우리의 소원은 언제나 통일이니까 ㅋㅋ

우리 애들이 학교에 들어가면서 유상급식에 이어 점차 무상급식이 실시되어,

모두들 도시락에서 해방 되었는데 난 아직도 도시락과 전쟁중이다.

 

내 엄마도 새벽밥 지어놓고 일 나가시기 전 두개뿐인 벤또를 싸놓고 나가셨었다.

반찬은 닥깡무침, 콩자반, 하지감자쪼린거, 짐치 중 한가지 일때가 많았다.

두 오빠가 냉큼 차지하는데 어쩌다 동생인 내게 양보해줄때면,

아빠의 손수건에 곱게 싸가지고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에 갔다.

기다리던 점심 시간... 다행이 혼식, 분식을 장려하던 시절이라

보리밥이 부끄럽진 않았다.

다만 다른 친구들의 쏘세지 부침, 계란 말이, 멸치 볶음, 장조림 반찬에

군침이 돌았을 뿐이었다^^

 

뚜껑으로 반찬을 가려놓고 아껴가며 먹었는데도, 금새 절반 이상이나 비워진

벤또를 다시 싸매 책상밑에 넣어두었다.

학교가 끝나고 동네 아그들을 기다렸다가 시끌 시끌 떠들고 해찰하며

집으로 향해 가다 성두가 보일때쯤이면, 오늘은 어느 길로 갈까 의견이 분분하였다.

군부대를 지나 뗏집으로가는 신작로길, 성두를 지나 애수갯재 길로 가는길,

옥동을 지나 소롯골로가는 산길이 있어서 장깸으로 결정하기도 했다.

 

성두를 지날때면 성두 머시매들이 그악시럽게 텃세를 해서 꺼려지기도 했으나,

주로 안떰, 건넷떰, 큰떰 아그들이 같이 갈때는 애수갯재 길로 갔다.

논,밭길을 따라가면 애수갯재 초입에 작은 도랑이 있었는데,

여름엔 항시 물이 졸졸 흘렸다.

우린 그곳에서 책보를 내려 놓고 땀에 전 손,발과 미끄덕거리는 껌정 고무신을

씻은다음, 돌팍 위에 앉자서 남겨온 밥을 한입씩 나눠 먹고 놀았다.

빈 벤또를 깨깟이 씻어 가지고  고개길로 접어 들어, 돌무덤위에

반반한 돌을 올려놓고 두손 모아 합장한뒤 애수갯재를 넘었다.

길가의 풀섶에 지천인 산 딸기를 각자의 입과 벤또에 따 담고,

오도개나 포리똥도 동생몫으로 고이 간직했다.

 

안떰 애들끼리는 소롯골로도 많이 넘어갔는데, 각시 찔롱과 대삐비,

징검, 머루, 포리똥, 싸리버섯, 산 밤, 임자없는 감을 찾아 온 산을 헤매고 다녔다.

실뭇해지면 넓은 묏등가에 앉자 수확물을 갈무리하며 벤또속에 감춰둔,

쑥개떡이나 보리개떡을 나눠먹으며 시간가는줄 모르고 놀았다.

새털 구름이 점점 발갛게 달아올라 노을이 황홀하게 물들어서야

후다닥 비탈길을 내려가면은 초가집 굴뚝에서 밥짓는 연기가 정겹게 피어 오르고 있었다.

 

가끔씩 신작로에서 세곡에 가는 우체부 아저씨나 구루마(소달구지)를 만나

책보를 올려놓고 뒤에 매달리며 뗏집으로 가기도 했다.

오르막은 밀어주고, 내리막은 올라타고 가노라면 벤또 소리를 달가닥거리며,

뒤에서 쫓아온 선,후배를 만나 한통속이 되곤 하였다.

그러면 뗏집에서 잔등까지의 대게 먼 대개길이 담배 한대참에 지나와 버린듯 했다. 

 

국민학교 2학년때 담임 선생님이 내게 심부름을 시키시고,

점심 도시락을 같이 먹자고 젓가락을 쥐어 주신적이 있다.

선생님 딸도 같이 있어서 수줍게 집은 멸치 한마리가 뱅그르 돌며 튀어올라,

멀리 교실 바닥에 떨어져서 쥐구멍을 찾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5,6학년 때였던가?

도시락을 자주 못 싸오는 나에게 자신의 도시락을 함께 나누어 먹자하고,

때때로 내몫의 도시락을 싸다 주곤 했던 친구가 둘 있었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했던 그 시간...

작은것에도 즐거움과 행복이 넘쳤던 그 시절이 아련하다!!! 

 

2014년 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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