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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나 어렸을적에

어느 겨울 눈오던 날

by 막무가내 옥토끼 2014. 10. 9.

아마도 국민 학교 4~5학년 때쯤이었으리라.

 

그날 아침에도 일어나 방문을 여니 마당 가득 흰눈이 쌓여 있었다.

 

언덕위 감나무의 주홍빛 감위에도 나무 울타리위에도 장독대 위에도 소복소복...

 

길과도랑.논.밭위에도 흰눈이 쌓여 어디가 어딘지 구분하기 어려운 은백의 신세계다.

 

아침나절 눈가래와 대빗자루를 동원하여 마당의 눈을 치우고 ,

 

마당가에 뚜끄럼판도 단단하게 만들었다.

 

찬물을 뿌려서 더 땡땡 얼어 붙도록 해놓고,

 

동네 우물가까지 손을 호호불어가며 눈길을 쓸어 갔다.

 

 

 

시끌벅적 아이들 노는 소리에 달려나가 눈 사람도 만들고,

 

눈 싸움도하며 신나게 놀고 들어와 가마솥에 끓여 놓은 달달한 호박죽을 먹었나?

 

신김치를 썰어 넣어 끓인 얼큰한 김치죽을 먹었나,

 

여느때처럼 모락모락 김이나는 찐고구마랑 얼음동동 뜬 싱건지를 먹었나...

 

아무튼 이중에 한가지를 먹었을게다.

 

장작불로 뜨끈뜨끈해진 아랫목 구들장에 누워,

 

노곤하게 한잠 자고 일어나니 다시 눈이 내리고 있다.

 

하얀 솜털처럼 사뿐이 내려 앉는 함박눈...

 

제일 큰 눈송이를 입으로 받아 먹으려 고개를 쳐들고 바라본 하늘은,

 

별들이 내게로 와락 쏟아지는듯 환상적이었지!!

 

 

 

갑자기 쥐죽은듯 고요해진 동네를 이집 저집 기웃거려보지만, 아그들이 암도 없다.

 

머시매(남자)들은 어른들을 따라 토끼몰이를 갔거나,

 

즈그들끼리 꿩을 줏으러 갔나 보다.

 

가시내들은 어느집 작은방에 모여 고구마를 구워먹으며,

 

목도리나 장갑을 뜨게질 하겠지...

 

하도(매우)심심하여 막내 여동생을 데리고

 

반들반들한 눈길을 쭈욱죽 미끄럼 타며 놀았다.

 

사람들이 많이 다닌 길을 달려 미끄럼을 타다보니 신작로까지 나왔다.

 

"연희야, 차도 안댕깅게 우리 고창까지 가복까?"

 

그렇게 매급시(이유없이,그냥)십리길을 전세 내어 뚜끄름을 타며,

 

엎어지며 뒤집어지며 고창에 닿았는데,

 

돌아갈 생각을 하니 가는도중 날이 저물것 같아 와락 겁이 났다

 

 

 

땟집을 지나 세곡으로 접어들었는데 뒤에서 차 한대가 느리게 다가와 앞서 간다.

 

그래서 우리는 그 차를 따라 잡으려고 계속 달렸다.

 

그 차는 뒤에 양쪽 문이 달린 짐차였는데 문이 잘 안 잠겼는지,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문짝이 열렸다 닫혔다 한다.

 

어느 순간 문사이에 박스 하나가 보이더니 언덕길에서 툭 떨어진다.

 

달려가 살펴보니 자갈치 스낵과자이다.

 

박스를 주워 들고 차를 향해가는데 또 박스 하나가 문사이로 고개를 내민다.

 

동생과 내가 동시에 "떨어져라, 떨어져라~"기압을 넣었더니 또 툭 떨어진다.

 

이번엔 오징어 땅콩과자다!!

 

아~이게 웬 횡재냐 ㅋㅋㅋㅎㅎㅎ

 

차는 어느새 내리막길을 달려 반룡으로 멀어져간다.

 

 

 

우리는 과자 박스를 들고도 나는듯이 달려 집에 도착했다.

 

땅거미가 지는데 들어오지 않는 딸들을 토방끝에서서 기다리던 엄마께

 

과자 박스를 안겨 드리며 횡설수설 두서없이 우리의 무용담을 쏟아냈다.

 

"아이고 어쩌끄나, 점빵에 배달허로 가는가빈디~" 혀를 끌끌차며

 

배달차 운전수를 걱정하시는 엄마의 눈에도 어느새 기쁨이 일렁인다.

 

 

 

그 겨울 ...자갈치 스낵과 오징어 땅콩과자를 아껴먹으며

 

기쁨과 고소함속에 내 키도 한 뼘은 더 자랐으리라.

 

그리고 언제나 겨울이 오면 난 "그 어느 겨울 눈오던 날'을 추억한다.

 

 

 

2012년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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