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21일
비닐하우스를 두드리는 빗소리 때문에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아침까지 비가 오면 어쩌나 걱정 되었다.
설핏 잠든 틈에 누군가 다가와서 "아, 비박하네~ 수고하쇼." 하며
지나가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보니 새벽 4시경이다.
버너에 아침지을 쌀을 올려놓고 다시 누워있는데,
소란스런 소리와 해드렌텐 불빛들이 어지럽게 우리텐트를 급습한다.
비박하는것도 비닐텐트도 신기한지 산악회원들이 두런거려
"안녕하세요~" 했더니 수고하시라며 갈길을 향한다.
비는 그쳤는데 날은 아직 어두워 밥이 뜸들일 동안 누워있는다는게
또 잠이 들어 탄냄새가 나서 일어났다.
4시 40분쯤 나이좀 든 듯한 아저씨가 "어쩐지 탄냄새가 나는것 같더라니~
혼자 백두대간하는 사람인데, 비박하느라 수고하십니다" 하며 지나가셨다.
씻어나온 쌀로 한 밥이 찰기가 없어 밥맛 입맛이 달아나버려
대신 누룽지를 목구멍에 들여보냈다.
젊은 아줌마 두사람이 길을 헷갈려해서 방향을 가르쳐주고,
우리도 서둘러 짐정리를 하여 5시 40분에 배낭을 둘러맸다.
밤새 내린 비가 나뭇잎에 고여 옷과 신발을 다 적실거라 생각했는데,
부지런한 산꾼들이 다 털고 지나가서 게으름도 피울만하다^^
이구간은 울투라 바우길구간과 겹쳐있어서인지 쉼터가 잘 갖춰져있고
바우길 표시기도 드문드문 길안내를 해주어 반갑다.
작년에 백두대간을 하면서 막간을 이용하여 바우길
1. 2. 3. 4. 10. 11 구간을 혼자 걸었었다.
길 잃어버리기를 밥먹듯하고, 밥먹을 새도 없이 헤매고 다녔더랬다.
덕분에 강원도와 많이 친해지고 길눈도 좀 밝아진듯하다.
울트라 바우길은 74.4 km... 엄두도 못냈는데,
이번에 27 km 정도를 걷게되어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안개가 걷히면서 시야도 밝아지고 바람도 살살불어서,
산행하기 안성마춤인 날을 잘 받은것 같다.
어께를 짖누르던 배낭을 벗어놓고 무게 중심을 잃어
휘청거리는 몸으로 화란봉에 올랐다.
닭목재에서 부족한 식수를 보충하고자 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사람은 안보이고 덩그런 건물에서 쎄콤이 쌔하게 노려본다.
2병 남은 물로 고루포기산까지 1병, 능경봉까지 1병을 나눠 마시기로하며,
포기하지 않고 고루포기산을 오른다.
갈증과 허기까지 면해주면서 몸에 활기를 채워주는 아껴둔 사과 한알!
언제나 제일 힘든 봉우리에서 꺼내먹으며 행복에 젖곤했는데,
오늘도 기대를 져버리지않고 시큼달달한 과즙이 입안에서 축제를 연다.
전망대를 지나 내려가다가 아침에 목소리로만 만났던 홀대모 아저씨를 만났다.
환갑기념 백두대간을 하신다는 모범택시 기사분과,
남은 거리를 같이 걷고자 작정하고 보조를 맞추었다.
나이보다 젊고 건장해보이시는 아저씨는 여태껏 열심히 일했으니,
70세까지 다시 남진도 하고 100대 명산도 하시며 마음껏 자유를 누리시겠다고....
산악회에서 백두대간 얘기를 접한 뒤, 무작정 혼자 해보겠다고
비싼 최첨단장비를 한꺼번에 구입하여 무모한 귀족 대간을 하고 계신단다.
대간 걸으면서는 힘들어서 '왜 왔을까~' 하시고, 돌아가서는 카카오스토리를 보시며
'내 평생에 이런 기맥힌 날들도 있구나' 감동하시며 또 배낭을 꾸리신다고.
이야기를 하며 걸으니 가파른 돌계단이 끝없이 이어진
행운의 돌탑을 어느새 지나고 능경봉에 다달았다.
우리끼리만 통하는 백두대간 여정을 담은 사진을 찾아보여주시며,
끝없이 추억담을 풀어놓으시는 아저씨와 대관령에 내려섰다.
예쁜꽃과 시원한 샘물로 몸과 마음을 깨끗이 순화시키고,
대관령 휴게소에서 택시를 타고 강릉으로 향했다.
터미널앞 식당에서 나이 많은 형아가 한턱 쏘신다며
물막국수를 사주셔서 게눈 감추듯 했다.
아저씨의 건강하고 안전한 산행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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