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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울 엄마의 먹방도전

by 막무가내 옥토끼 2015. 1. 20.

어렸을적에 고구마나 수제비, 꽁보리밥으로 끼니를 연명한 춘궁기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우리 세대엔 많다.

그들중 몇몇은 요즘 웰빙이다하여 선호하는 잡곡밥이나 예전에 질리도록 먹었던 음식들을

쳐다보기도 싫다고 집안에서 데모를 한다는데....

우리 5남매가 모일때면 수숙밥, 고구마밥, 김치죽, 풀데죽을 먹었던 시절을 곧잘 떠올리지만 ,

질려서 싫어하는 음식은 없다는데 의견 일치.

울엄마 음식 솜씨가 음식장사를 해도 손색이 없을만했고,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매번 다른 음식을 맛있게 요리하셔서 늘 더 먹고 싶은 욕망을 잠재워야했으니....

난 엄마의 음식 맛과 살림살이를 따라갈려면 맨발 벗고 뛰어도 어림없지 아마도? 헉헉::

고로 엄마가 우리집에 계실 동안 해드릴 음식이 살짝 고민.

당신이 잘 하시고 늘 먹어온 음식은 여간해선 잘먹었다는 소릴 듣기는 고사하고,

흉이나 잽히기 십상이겠지....

아예 색다른 음식을 해드려서 잘 잡수면 다행이고, 아니어도 밑져야 본전.

 

닭가슴살과 파프리카, 버섯, 양배추를 데치고, 썰고, 볶으고...새콤 달콤한

과일 드레싱을 뿌려서 또띠아를 만들어봤다.

"엄마, 맨날 먹던것 말고 새로운것도 한번 잡셔보셔^^"

"이것이 뭐다냐? 언제 이런것을 먹어봤간디..."

"외국 사람들이 먹는 건데 입맛에 안 맞으면 된장국하고 밥도 드릴께."

"야 야, 예전에는 고기랑 우유도 안 먹던거라 못 먹것던디 인자는 맛있더라.

이것도 한번 먹어볼란다. 어떻게 먹는거다냐?"

"손으로 꽉 잡고 안 흘리게 한 입씩 비어 먹어보씨요."

"아따 시고 달고 맛나다야, 이놈 하나 먹으면 배도 든든하것다.

친구들한티 자랑헐란디 이름이 뭐다냐?" 하시며 칭찬해주시니 춤도 출뻔했다ㅎㅎㅎ

 

죽집에서 알바하는 막내가 특전복죽을 사가지고 왔다고, 또 울멈마 입에 침이 마른다.

"시상에나 저것이 할무니 줄라고 전복죽을 사와서 먹었는디 기가 먹히게 맛나다야,

따땃하고 전복도 많이도 들고...나는 배부르게 먹었쓴게 너도 얼릉 먹어봐라이"

이에 질세라 큰애도 김밥집 알바할때 익힌 솜씨를 발휘했다.

마요네즈에 맛살을 버무려 깻잎에 싸고, 야채를 곁들여서 밥으로 둘둘 말은 

이름하야 누드김밥~

"어디서 이런것을 다 배워서 맨들었다냐, 간도 잘 맞고...할매가 니들 덕분에 호강헌다야"

며칠후 막내가 뭐든 새로워하고 좋아하시는 할무니을 위해 칼을 빼 들더니.

요리책을 보며 서툰 솜씨로 뚝딱거려서 스파게티와 김치 볶음밥을 한상 차려놓았다.

"칼질을 못해서 옹삭스럽게 뜸벙뜸벙 썰드만 처음인디도 쓰것게 맨들었네,

솜씨도 있고 손도 크고....맛나서 둘다 먹었드니 배부르다야 ^^"

 

주말에 엄마를 뵈러 오빠, 동생네가 먹거리를 잔뜩 사가지고 들이닥쳤다.

엄마가 코치해준 팥칼국수가 동이 나고, 동생이 끓인 매운탕이 모두의 입맛을 사로 잡았다.

"울 엄니가 매운탕을 맛나게 잘 잡수겟는디 나도 나이 먹음서 엄니 식성을 탁이더라.

매운탕이 서원허고 얼큰허니 맛나다야"  

매생이 굴국과 도토리 묵밥도 맛보여 드리고 싶어 김치 쫑쫑, 파 송송...정성을 들였건만

매생이국은 물이 적어서 아쉽고, 묵밥도 2프로 부족한 맛이라 조심스레 점수를 점친다.

"생전 듣도 보도 못헌것들을 다 먹어본다이. 개운허니 먹을만 허다,

테레비 본게 요새는 별별 음식도 많더라. 고기에다 채소랑 해물도 넣고 몸에 좋다는것을

모다 넣어서 끓여서 먹드랑게"

 

옛날엔 없어서도 못 먹고, 있어도 별식은 어른들이나 남자들 몫으로 알고,

먹을 생각도 안하셨다는 울멈마!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는데....

느끼하다고 , 비리다고, 돈 아깝다고, 니 맛도 내맛도 아니다고,

된장국이나 김치국에 밥말아 드시던 엄마!

우리가 애쓰는게 기특해서, 늘 홀로 계시다 식구들이 모여 같이 먹으니 좋아서,

당신께 신경 써드리니 고마워서, 더 맛있게 드시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으리.

 

울엄마께 보기에도 근사한 '한방 해물 오리탕과 해물 모듬 철판요리'를

사드렸더니 왜 이리 내마음이 뿌듯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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